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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고인돌 유적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도산리 일대에 밀집해 있는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다.

화순 고인돌 유적, 강화 고인돌 유적과 함께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유산에 포함된 고창 죽림리 일대에는 440기 이상의 고인돌이 밀집해 있으며, 고창군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약 2,000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에 고인돌이 워낙 많다 보니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시골 산기슭에 큰 돌 하나 있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고인돌 밀도는 상당히 특이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고창은 좁은 지역에 수백 기가 몰려 있고 탁자식·기반식·개석식 등 서로 다른 형태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고인돌 문화를 연구하기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쉽게 말하면 청동기시대 무덤 수백 개가 산기슭에 단체로 깔려 있는 곳이다.

역사와 특징

고창 고인돌 유적은 고창읍 동쪽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산기슭을 따라 길게 분포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죽림리 일대에는 440기 이상의 고인돌이 확인되어 있는데,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니라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이 고인돌이라고 하면 커다란 돌 하나를 받침돌 몇 개 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생각하지만 실제 고인돌은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것도 있고, 무덤방을 땅속에 파고 위에 받침돌과 덮개돌을 올린 것도 있으며, 받침돌 없이 지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돌만 얹은 형태도 있다.

고창에서는 이런 여러 형식이 한 지역에서 함께 나타난다. 때문에 한반도 고인돌 문화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비교하기에 매우 좋은 자료다.

고창 고인돌은 대체로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세계유산 관련 연구에서는 죽림리 일대의 주요 고인돌들이 대략 기원전 7세기 전후부터 축조된 것으로 본다. 물론 수백 기의 고인돌이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지역에 살던 집단들이 반복해서 무덤을 만들면서 지금과 같은 거대한 고인돌군이 형성됐다.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무덤으로 해석하지만 단순히 시체 하나 묻고 끝내는 시설은 아니었다. 몇 톤에서 수십 톤에 이르는 거대한 덮개돌을 채석하고, 옮기고, 정확한 위치에 올리려면 상당한 규모의 공동노동이 필요했다.

크레인도 굴착기도 없던 시대에 이 정도 돌을 움직이려면 사람을 꽤 많이 동원해야 했다.

죽은 사람 한 명 묻는데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수십 톤짜리 돌을 끌고 와야 했다면 그 사람이 아무나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고인돌은 당시 지배층이나 유력자와 관계된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동시에 청동기시대 사회가 어느 정도의 조직력과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고인돌의 형태

고창 고인돌 유적에서는 대표적으로 탁자식, 기반식, 개석식 고인돌이 확인된다.

탁자식 고인돌은 지상에 판석으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형태다. 학교 교과서에서 가장 자주 봤을 법한, 커다란 돌기둥 위에 넓은 돌판이 올라간 모양이다.

기반식 고인돌은 무덤방을 땅속에 만들고 그 위에 비교적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다. 남방식 고인돌이라고 부르던 경우도 있지만 현재는 형태를 기준으로 기반식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개석식 고인돌은 지하 무덤방 위에 별도의 받침돌 없이 덮개돌을 직접 올린 형태다. 겉으로 보면 그냥 땅바닥에 커다란 돌 하나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여 고인돌인지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고창은 이런 서로 다른 형식이 한 지역에 함께 분포한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고인돌 숫자가 많은 지역은 다른 곳에도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형태가 밀집해서 나타나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고창의 고인돌 문화

고창군 전체에는 약 2,000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죽림리 일대는 그중에서도 특히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의 세계유산 핵심구역 면적 자체는 약 8.38ha로 아주 넓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그 안팎에 수백 기가 몰려 있기 때문에 직접 가보면 생각보다 고인돌이 계속 나온다.

처음 몇 개 볼 때는 “오, 고인돌이다” 싶다가 계속 걷다 보면 “여기도 고인돌이고 저기도 고인돌이네” 상태가 된다.

고인돌 연구에서 고창이 중요한 이유는 무덤뿐만 아니라 주변 지형과 채석 흔적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인돌을 만들려면 먼저 적당한 암석을 찾아 떼어내야 하고, 그 돌을 수백 미터 또는 그 이상 이동시켜야 한다.

고창과 화순 지역에서는 이런 돌의 채석과 운반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흔적들이 확인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이 정확히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통나무, 밧줄, 지렛대, 흙으로 만든 경사로 등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덤과 받침돌을 먼저 만든 뒤 주변에 흙을 높게 쌓고 덮개돌을 끌어올린 다음 흙을 다시 제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당연히 외계인이 크레인 들고 와서 올려준 건 아니다.

수십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보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발굴과 연구

고창 일대 고인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는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196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실시되면서 고인돌의 수와 형태, 주변 유적의 성격이 점차 확인됐다.

일부 고인돌에서는 석검, 석촉, 토기류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하지만 모든 고인돌에서 화려한 부장품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도굴이나 훼손을 당한 경우도 있고, 원래 부장품이 많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무덤 안에서 나온 물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고인돌의 구조, 덮개돌의 크기, 방향, 주변 다른 고인돌과의 거리, 당시 취락과의 관계까지 함께 살펴본다.

고인돌 하나만 보면 그냥 큰 돌인데, 수백 개를 지도 위에 올려놓고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어디에 살았고 어디에 무덤을 만들었는지까지 어느 정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창 고인돌 유적은 2000년 화순 고인돌 유적, 강화 고인돌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공식 세계유산 명칭은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다.

세 지역은 서로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한반도 고인돌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공통점 때문에 하나의 세계유산으로 묶였다.

고창은 고인돌의 밀도와 형식의 다양성, 화순은 산기슭을 따라 대규모 고인돌군과 채석장이 함께 남아 있다는 점, 강화는 대형 탁자식 고인돌을 비롯한 북방계 고인돌 형태가 잘 나타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네스코는 이 유적들을 동북아시아 선사시대 거석문화와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고인돌 자체가 워낙 흔해서 그 가치를 체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옛날 시골에서는 밭 한쪽에 엄청 큰 돌이 있으면 “저거 옛날 무덤이라던데”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보면 특정 지역에 고인돌이 수백 기씩 모여 있는 현상 자체가 매우 드물다.

한반도는 세계적인 고인돌 밀집지역이고, 고창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장소다.

고창고인돌박물관과 관람

유적 입구에는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있다.

주소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다.

박물관에서는 고인돌의 종류와 구조, 청동기시대의 생활상, 장례문화,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 등을 전시한다.

고인돌 유적은 아무런 설명 없이 먼저 들어가면 솔직히

“큰 돌이네.”

“또 큰 돌이네.”

하다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박물관을 먼저 보고 유적을 둘러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왜 저 돌이 저런 형태인지, 어떤 것이 탁자식이고 어떤 것이 기반식인지 알고 나면 그냥 바위처럼 보이던 것들이 전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유적지에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여러 고인돌군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유적의 범위가 꽤 넓기 때문에 관광객 이동을 위한 모로모로열차도 운영된다.

고창고인돌박물관 주변에는 선사체험마을 등 관련 시설도 조성되어 있어 단순히 고인돌 몇 개 보고 끝나는 관광지라기보다 청동기시대 문화 전체를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되어 있다.

보존

고창 고인돌은 세계유산이자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고인돌이 돌덩이라서 “저게 뭐가 망가지냐?” 싶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관리할 게 많다.

나무뿌리가 받침돌 주변 지반을 파고들 수 있고, 장기간의 침식이나 집중호우 때문에 지반이 내려앉을 수도 있으며, 덮개돌이 조금씩 기울어질 수도 있다. 산불이나 주변 개발 역시 유적의 보존환경에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고인돌은 돌 자체만 보존한다고 끝나는 유적이 아니다.

어느 산기슭에 어떤 방향으로 놓였는지, 주변 고인돌과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당시의 지형이 어떠했는지까지 전부 고고학적 정보다.

고인돌 하나만 뽑아서 박물관 앞에 가져다 놓으면 돌은 남아 있어도 원래 유적이 가진 정보 상당 부분은 사라진다.

그래서 세계유산 핵심구역뿐 아니라 주변 완충구역의 경관과 지형도 함께 관리한다.

여담

  • 세계유산 번호는 977이다.
  • 고창군 전체에는 약 2,000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죽림리 일대에는 440기 이상의 고인돌이 확인되어 있다.
  • 세계유산 핵심구역 면적은 약 8.38ha다.
  • 고창 고인돌군 가운데 상당수는 기원전 7세기 전후부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한반도 전체에는 수만 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워낙 흔하다 보니 체감하기 어렵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엄청난 숫자다.
  • 고인돌은 보통 무덤으로 이해되지만, 대규모 공동노동이 필요한 시설이라는 점에서 당시 사회의 권력과 조직력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 큰 덮개돌 중에는 무게가 수십 톤에 이르는 것도 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이런 돌을 옮겨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꽤 대단하다.
  • 고인돌이라고 해서 전부 교과서에 나오는 탁자 모양은 아니다. 그냥 큰 돌이 바닥에 놓인 것처럼 생긴 개석식도 상당히 많다.
  • 고창은 서로 다른 형태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같이 나타나는 것이 큰 특징이다.
  • 고인돌박물관부터 보고 유적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면 수백 개가 있어도 전부 비슷한 돌처럼 보일 수 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