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고인돌 유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유적이다. 국가유산 공식 명칭은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이며, 2000년 고창 고인돌 유적, 강화 고인돌 유적과 함께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화순 일대에는 계곡을 따라 약 10km에 걸쳐 고인돌과 고인돌로 추정되는 유구가 빽빽하게 분포한다. 국가유산청 자료 기준으로 고인돌 287기, 추정 고인돌 309기 등 총 596기가 확인되어 있다. 숫자도 숫자지만 화순 유적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완성된 고인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비탈에 채석장까지 남아 있어 사람들이 어디서 돌을 떼어내고 어떻게 옮겨 무덤을 만들었는지까지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인돌 하면 흔히 교과서에서 탁자처럼 생긴 돌 몇 개 사진 보고 끝나는데, 화순에 가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작은 것부터 수십~수백 톤급 덮개돌까지 산과 계곡을 따라 줄줄이 놓여 있고, 완성품 옆에 돌을 캐던 흔적까지 남아 있다. 선사시대판 공사현장과 공동묘지를 같이 보는 셈이다.
발견과 조사
화순 고인돌 유적은 다른 유명 선사유적에 비해 비교적 늦게 학계에 알려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이 일대에 대규모 고인돌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는데, 1995년 화순군 일대의 문화유산 조사를 통해 효산리와 대신리 계곡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정밀조사가 진행되면서 유적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효산리와 대신리는 보검재라는 낮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으며, 계곡과 산기슭을 따라 수많은 고인돌이 거의 연속적으로 분포한다.
유적이 비교적 늦게 발견된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도시개발이나 대규모 경작으로 인한 훼손이 적었고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었다.
1998년에는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12월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고인돌
고인돌 또는 지석묘는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무덤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청동기시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한반도는 세계적으로도 고인돌이 매우 많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화순 유적에는 여러 형태의 고인돌이 함께 존재한다.
대표적인 유형은 다음과 같다.
- 탁자식 고인돌 - 지상에 판석을 세워 무덤방을 만든 뒤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얹은 형태.
- 바둑판식 고인돌 - 낮은 받침돌 여러 개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형태.
- 개석식 고인돌 -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를 큰 돌로 덮은 형태.
- 지상석곽형 - 지상 또는 지면 가까이에 돌로 무덤방을 조성한 형태.
화순 고인돌 유적에서는 특히 바둑판식과 개석식이 많이 확인된다.
덮개돌의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작은 것은 몇 톤 수준이지만 큰 것은 수십 톤, 일부는 100톤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전체를 설명하면서 덮개돌 무게가 10톤 미만에서 최대 약 300톤에 이르는 사례까지 있다고 소개한다.
이쯤 되면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저걸 어떻게 옮겼냐"는 질문이 자동으로 나온다.
채석장
화순 고인돌 유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인돌 채석장이 함께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고인돌을 만들려면 먼저 거대한 덮개돌을 어디선가 구해야 한다.
화순에서는 산비탈의 자연 암반에서 돌을 떼어낸 흔적이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일부 암반에는 돌을 분리하기 위해 홈을 내거나 쐐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남아 있다.
특히 보검재 주변에는 고인돌에 사용될 돌을 떼어내다 중단한 것으로 보이는 바위와 채석 흔적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화순 유적은 단순히 "고인돌이 많이 있다"는 것을 넘어
채석 → 가공 → 운반 → 고인돌 축조
과정을 한 지역 안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고인돌 덮개돌은 대부분 주변 산의 암석과 같은 종류인 것으로 조사되어 아주 먼 곳에서 가져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다. 수십 톤짜리 돌을 산에서 떼어내 계곡이나 평지까지 옮기는 데에는 상당한 인력과 조직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통나무를 굴림대로 사용하거나 흙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밧줄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흔히 제시되지만, 정확한 방법은 아직도 연구 대상이다.
주요 고인돌
화순 유적에는 각각 별칭이나 번호가 붙은 고인돌들이 있다.
핑매바위 고인돌
가장 유명한 것은 핑매바위 고인돌이다.
거대한 덮개돌 때문에 화순 고인돌 유적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덮개돌 무게는 약 200톤 이상으로 추정되며 국내에서 가장 큰 고인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전승이 있는데, 큰 바위를 던지거나 밀어놓았다는 식의 민간설화와 연결되어 전해진다.
실제로 보면 "무덤"이라는 말보다 그냥 웬 바위산 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규모의 돌을 인력으로 옮겼다면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동원됐을 것으로 보이며, 당시 사회에 공동노동을 조직할 수 있는 지배층 또는 정치적 권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해석된다.
관청바위 고인돌
관청바위 고인돌도 대표적인 대형 고인돌 중 하나다.
평평하고 넓은 덮개돌 때문에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변 고인돌군과 함께 당시 묘역의 규모를 보여준다.
감태바위 고인돌
감태바위 고인돌 역시 화순 유적의 주요 고인돌 가운데 하나다.
이 일대에서는 거대한 단독 고인돌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고인돌이 그룹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걸어보면 공동묘지에 가까운 성격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무엇을 알 수 있나
고인돌은 단순히 시신 한 명 묻어놓은 돌무덤이 아니다.
저만한 돌을 옮기려면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함께 작업해야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모으고 노동을 지휘하고 먹을 것을 공급할 수 있는 사회조직도 존재해야 한다.
특히 매우 거대한 고인돌은 당시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을 위한 무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인돌 주변에서는 간돌검, 돌화살촉, 토기류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며 일부 무덤에서는 청동기류도 발견된다.
이런 부장품의 차이를 통해 당시 사회에 일정한 신분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도 추정한다.
고인돌의 위치 역시 중요하다.
화순 고인돌은 평지 한복판뿐 아니라 계곡과 산기슭을 따라 길게 분포한다. 주변 농경지와 교통로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놓인 경우도 있어 단순한 매장시설뿐 아니라 공동체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권위를 과시하는 기념물 성격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결국 고인돌 하나만 가지고는 죽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지만 수백 기가 모여 있는 유적 전체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살았는지는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세계유산 등재
화순 고인돌 유적은 2000년 고창·강화 고인돌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식 세계유산 명칭은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이다.
등재기준은 (iii)이다.
유네스코는 세 지역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고인돌 밀도를 보여주며, 다양한 고인돌 형식과 축조과정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평가했다.
특히
- 고창은 좁은 지역에 매우 많은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는 점,
- 화순은 고인돌과 채석장이 함께 남아 있다는 점,
- 강화는 산기슭의 높은 지역에 탁자식 고인돌이 분포한다는 점
에서 각각 다른 특징을 가진다.
세 지역을 함께 보면 한반도 고인돌 문화의 다양한 형태와 발전과정을 비교할 수 있다.
세계유산 전체 면적은 약 52ha이며, 고인돌 유적 자체뿐 아니라 주변 경관과 매장환경도 함께 보호하고 있다.
보존과 정비
화순 고인돌 유적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탐방로와 전시시설 등이 정비됐다.
고인돌 주변은 원래 산길과 농경지가 섞여 있었지만 현재는 주요 고인돌을 연결하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관람객들이 무분별하게 고인돌 위로 올라가거나 주변 유구를 훼손하지 않도록 울타리와 안내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다만 유적 자체가 상당히 넓고 대부분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 풍화, 집중호우, 식생 성장 등 자연적인 훼손요인도 계속 관리해야 한다.
고인돌은 수천 년을 버틴 돌덩어리라 별것 없을 것 같지만 덮개돌을 받치는 지반이나 주변 토사가 무너지면 구조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화순군에서는 고인돌 유적을 단순한 보호구역으로 두는 데서 벗어나 선사문화 체험과 축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고인돌 유적지와 선사체험
유적 주변에는 고인돌 관련 전시와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선사시대 생활을 주제로 한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불 피우기, 석기 사용, 움집, 고인돌 축조방식 등을 교육용으로 재현한다.
매년 고인돌을 소재로 한 축제와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유적 주변은 넓은 야외공원과 산책로 형태로 정비되어 있어서 역사에 큰 관심이 없어도 걷기 좋은 편이다.
다만 고인돌이 한 장소에 전부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지므로 제대로 보려면 이동거리가 상당하다.
관람
화순 고인돌 유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있다.
유적이 약 10km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어 입구 하나 들어가서 한 바퀴 돌면 끝나는 박물관식 관광지는 아니다.
주요 고인돌과 채석장을 중심으로 탐방로가 연결되어 있다.
자동차나 유적지 내 이동수단을 이용해 주요 지점을 연결해서 보는 방식이 편하다.
광주광역시에서 비교적 가까워 광주와 화순을 묶어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적은 대부분 야외에 있으므로 여름에는 햇빛과 더위를 대비하는 것이 좋고, 비가 많이 온 뒤에는 일부 산책로 상태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고인돌 자체에 올라가거나 덮개돌을 만지며 장난치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수천 년 살아남은 세계유산을 관광객 한 명이 마지막 타자로 끝장낼 필요는 없다.
여담
- 국가유산의 정식 명칭은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이다. 관광지나 세계유산 명칭으로는 화순 고인돌 유적이라는 표현이 훨씬 많이 쓰인다.
- 한자로 고인돌을 지석묘(支石墓)라고 한다. 말 그대로 돌을 받쳐 만든 무덤이라는 뜻이다.
- 대한민국에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난히 많은 고인돌이 분포한다. 국가유산청은 세계 약 7만 기 가운데 한반도에 약 3만 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 화순 유적은 발견 시점이 비교적 늦어서 보존상태가 좋은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 수백 개의 고인돌 가운데 상당수는 겉만 보면 그냥 커다란 자연석처럼 보인다. 설명 없이 산에서 발견하면 선사시대 무덤인지 알아보기 힘든 것도 많다.
- 핑매바위처럼 엄청나게 큰 고인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유적에는 작은 덮개돌과 파손된 고인돌도 대량으로 존재한다.
-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의 민족이나 언어를 현재의 한국인과 그대로 연결하는 것은 곤란하다. 워낙 오래전의 선사시대 유적이라 문자 기록이 전혀 없다.
- 고인돌은 무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부 거석은 제사나 기념물 등 다른 기능을 함께 가졌을 가능성도 논의된다.
- 완성된 고인돌과 채석장이 같은 곳에 남아 있다는 점은 화순 유적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완제품뿐 아니라 공장까지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