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대안리·신촌리·덕산리 일대에 분포하는 삼국시대 대형 고분군이다. 국가유산 공식 명칭은 나주 반남 고분군이며, 2011년 7월 2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과 자미산을 중심으로 약 4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며, 특히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 옹관고분으로 유명하다. 신촌리 9호분에서는 금동관과 금동신발, 환두대도 같은 최고 지배층급 유물이 출토되어 이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정치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사에서 마한 하면 흔히 교과서 몇 줄로 끝나지만, 반남고분군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덤 크기와 부장품 수준을 보면 그냥 동네 촌장 몇 명이 묻힌 수준이 아니고, 영산강 유역에 상당한 독자적 세력을 가진 집단이 오랫동안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고분군 바로 옆에는 국립나주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영산강 유역의 고대 고분문화와 출토유물을 전문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발굴과 지정
반남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20세기 초 일본인 연구자들이 반남면 일대의 거대한 봉분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1908년 대안리 고분 일부가 발굴되었다. 이후 1917년 신촌리 9호분이 조사되면서 반남고분군의 중요성이 크게 알려졌다.
신촌리 9호분에서는 대형 옹관뿐 아니라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 매우 화려한 부장품이 출토됐다. 이런 물건들은 당시 최고 지배층이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운 물품이라, 영산강 유역에 강력한 정치집단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평가된다.
광복 이후에도 추가 조사와 발굴이 계속됐다. 대안리와 덕산리 고분에 대한 재조사가 진행됐고, 기존 일제강점기 발굴자료를 다시 분석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원래 대안리 고분군, 신촌리 고분군, 덕산리 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 각각 별도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 고분군이 자미산을 중심으로 하나의 고분문화권을 형성한다는 점과 역사적 성격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2011년 7월 28일 하나의 나주 반남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되었다.
현재 지정면적은 121,397㎡이다.
고분군 구성
반남고분군은 크게 대안리고분군, 신촌리고분군, 덕산리고분군으로 나뉜다.
| 고분군 | 위치와 특징 |
|---|---|
| 대안리고분군 | 자미산 서쪽 능선에 위치. 원래 12기 정도가 확인되었으며 대형 옹관묘가 집중됨. |
| 신촌리고분군 | 국립나주박물관 주변에 분포.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금동신발·환두대도 출토. |
| 덕산리고분군 | 자미산 동쪽 일대에 분포. 옹관묘와 돌방무덤이 함께 확인됨. |
대안리고분군
대안리고분군은 자미산 서쪽 능선에 자리한다.
과거 조사에서는 총 12기의 고분이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되었고, 현재는 일부 고분이 경작과 개발 등으로 사라진 상태다.
고분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분포한다. 가장 북쪽에 1~3호분이 있고, 그 서쪽 구릉 끝에는 10·11호분이 자리한다. 남쪽에는 9호분을 중심으로 4~9호분과 12호분이 분포한다.
이 가운데 대안리 9호분은 대안리고분군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고분 내부에서는 9기의 옹관이 확인되었고 금반지, 대도, 동전, 유리구슬, 토기 등이 출토됐다.
1908년 대안리 8호분과 9호분이 공식적으로 발굴되었지만 당시 조사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아 오늘날 다시 자료를 검토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촌리고분군
신촌리고분군은 국립나주박물관과 덕산리고분군 주변에 분포한다.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며 국립나주박물관 동쪽에는 1~3호분, 서쪽 구릉에는 4~6호분, 박물관 남쪽에는 7~9호분이 자리한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신촌리 9호분이다.
1917년 일본인 연구자 다니이 사이이치가 발굴했으며, 내부의 을관에서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 최고 지배층급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금동관은 영산강 유역의 정치세력이 상당한 위신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1999년 재발굴 조사에서는 고분 정상부를 장식했던 것으로 보이는 원통형 토기도 발견됐다.
이 원통형 토기는 일본 고분에서 발견되는 하니와 계통과 비교되기도 하며, 당시 영산강 유역 세력이 일본 열도와 교류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로 자주 언급된다.
덕산리고분군
덕산리고분군은 자미산 동쪽 능선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총 10기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시굴조사 결과 14기가 확인됐다.
국립나주박물관을 기준으로 동쪽에 1~6호분, 남쪽에 7~10호분 등이 분포한다.
특히 덕산리 10호분은 다른 반남고분군의 대표적인 옹관묘와 달리 돌방무덤 구조를 보인다.
이런 변화는 백제 세력이 영산강 유역으로 본격 진출한 뒤 지역의 기존 옹관묘 전통이 점차 사라지고 백제계 묘제가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덕산리 3호분은 일제강점기 조사 당시 이미 도굴된 상태였으며, 2021년에는 봉토와 주구 등 고분 축조방식을 확인하기 위한 재발굴 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대형 옹관고분
반남고분군을 대표하는 것은 대형 옹관이다.
옹관은 말 그대로 커다란 항아리를 관처럼 사용한 무덤이다.
작은 항아리에 어린아이를 묻는 옹관묘는 한국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지만, 영산강 유역에서는 성인의 시신까지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전용 옹관을 제작해 매장했다.
일부 대형 옹관은 길이가 2m에 가까울 정도로 크다.
이런 옹관 여러 개를 하나의 거대한 봉분 안에 넣는 경우도 많았다. 한 번 무덤을 만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을 추가로 매장하면서 봉분을 확장한 사례도 확인된다.
무덤의 평면형태도 다양하다. 원형이 가장 많지만 방형, 장방형, 사다리꼴 형태도 나타난다.
봉분 주변에는 도랑 형태의 주구를 파는 경우가 많았다.
영산강 유역의 대형 옹관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가야의 석곽묘와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묘제다.
특히 3~5세기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전했으며, 반남지역은 그 중심지 중 하나였다.
출토 유물
반남고분군에서는 지배층의 권력을 보여주는 화려한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물이 있다.
- 금동관
- 금동신발
- 환두대도
- 금반지
- 유리구슬
- 토기
- 철제 무기
- 각종 장신구
- 원통형 토기
특히 신촌리 9호분에서 나온 금동관과 금동신발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권력과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위세품으로 보며, 이런 물건을 부장할 수 있었던 피장자가 영산강 유역의 최고위 지배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환두대도 역시 당시 지배층의 군사적·정치적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유리구슬과 일부 외래계 유물은 영산강 유역 집단이 한반도 내부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해상교류망과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한과 백제
반남고분군은 흔히 마한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소개된다.
다만 고분이 만들어진 시기와 정치적 성격을 단순히 "마한 유적"이라고만 정리하기에는 조금 복잡하다.
마한은 여러 소국으로 이루어진 정치집단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북쪽에서는 백제가 성장했다.
백제는 점차 세력을 남쪽으로 확대했지만 영산강 유역에서는 5세기 무렵까지도 백제 중앙과는 다른 독자적인 대형 옹관고분 문화가 계속 유지됐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 지역에 백제와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상당한 자율성을 가진 토착 정치세력이 존재했을 것으로 본다.
이들을 흔히 영산강 유역 세력 또는 마한계 정치세력이라고 표현한다.
반남고분군처럼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금동관까지 사용할 정도였다면 상당한 인구와 경제력, 정치적 조직을 갖춘 집단이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다만 이 세력이 정확히 어느 소국이었는지, 백제와 어떤 관계였는지를 기록으로 명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마한 54개국 가운데 어느 나라와 직접 연결되는지를 두고 여러 가설이 있지만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후 6세기 무렵부터 영산강 유역에서도 백제계 굴식돌방무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기존의 대형 옹관고분 문화는 점차 사라진다.
덕산리 10호분처럼 옹관이 아닌 돌방무덤이 등장하는 모습은 이런 정치·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왜 반남이었나
반남 일대는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을 끼고 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농촌지역이지만 고대에는 강을 통한 교통과 물자 이동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입지였다.
영산강을 따라 서해로 나갈 수 있었고, 내륙의 여러 지역과도 연결되었다.
넓은 평야에서 농업생산도 가능했다.
이런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영산강 유역에는 고대부터 상당한 규모의 인구집단이 형성되었으며, 그 지배층이 거대한 무덤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이 자미산 주변의 낮은 구릉 위에 집중된 것도 멀리서 봉분이 잘 보이게 해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목적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초록색 언덕처럼 보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동네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거대한 권력자의 기념물이었던 셈이다.
국립나주박물관
반남고분군 한가운데에는 국립나주박물관이 있다.
2013년 개관했으며 영산강 유역의 고대문화와 고분 출토유물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박물관 자체가 반남고분군 옆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전시를 본 뒤 바로 실제 고분을 걸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신촌리 2·3호분은 박물관 바로 옆에 있어 산책로를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는 반남고분군에서 출토된 대형 옹관과 각종 장신구, 무기 등을 전시하며, 영산강 유역의 마한 문화와 백제의 진출 과정도 함께 설명한다.
특히 대형 옹관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크기를 보는 게 훨씬 이해하기 쉽다. 사람 하나 들어갈 항아리라고 생각하면 대체 어떻게 저걸 만들고 굽고 옮겼는지부터 궁금해진다.
반남고분군을 볼 생각이라면 고분만 돌아다니기보다는 국립나주박물관을 먼저 보고 나오는 것이 이해하기 훨씬 좋다.
역사적 의미
반남고분군은 영산강 유역 고대사 연구에서 핵심적인 유적이다.
기록이 매우 부족한 마한계 정치세력의 모습을 고고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옹관고분과 금동관 같은 최고급 부장품은 이 지역에 상당한 수준의 독자적인 정치권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삼국시대 역사를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세 나라 중심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백제가 성장한 뒤 한반도 서남부는 그냥 자동으로 백제 땅이 된 것처럼 설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을 조사하면서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백제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동안에도 영산강 유역에서는 독특한 옹관묘 전통과 지역 지배층 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반남고분군은 이런 삼국 사이에 존재했던 지역 정치세력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왜계 원통형 토기 등 일본 열도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는 점도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영산강 유역이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였고,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람
반남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신촌리·덕산리 일대에 넓게 퍼져 있다.
일반적인 관광에서는 국립나주박물관과 신촌리·덕산리 고분군을 함께 보는 것이 가장 편하다.
국립나주박물관 주소는 나주시 반남면 고분로 747이며, 박물관 동쪽과 남쪽에 여러 고분이 분포한다.
나주역에서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대중교통만으로 찾아가기는 가능하지만 서울의 대릉원처럼 역에서 내려 바로 걸어가는 관광지는 아니다.
고분 자체는 야외에 있어 산책하듯 돌아볼 수 있다.
봉분 위에 직접 올라가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겉으로는 그냥 잔디언덕 같아 보여도 밑에 진짜 고대 무덤이 있다.
국립나주박물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에는 정기휴관한다.
여담
- 국가유산 공식 명칭은 나주 반남 고분군이지만 흔히 그냥 반남고분군이라고 부른다.
-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범위는 대안리·신촌리·덕산리 고분군을 합친 것이다.
- 반남고분군 주변에서 보이는 봉분은 경주의 대릉원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넓은 형태가 많다.
-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은 한국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무덤문화라 이 지역 고대사를 상징하는 유적으로 취급된다.
- 신촌리 9호분에서 나온 금동관 때문에 이 지역의 정치세력 수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연구가 이어졌다.
- 금동관이 나왔다고 무조건 '왕국의 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당시 금동관은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위세품이지만 정확한 정치체제까지 알려주는 이름표는 아니다.
- 반남면은 반남 박씨의 본관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반남고분군을 만든 고대 집단과 후대 반남 박씨 사이에 직접적인 계보관계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 인근의 나주 복암리 고분군 역시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인 고분 유적이다. 복암리 고분군에서는 하나의 봉분 내부에 여러 시대의 무덤이 반복해서 들어간 독특한 구조가 확인됐다.
- 경주의 신라 고분을 보고 나주 반남고분군을 보면 같은 시기 한반도 안에서도 무덤 만드는 방식이 얼마나 달랐는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신라는 돌을 잔뜩 쌓았고, 이쪽은 사람 들어갈 만한 거대한 항아리를 만들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