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연등회(燃燈會)는 불교에서 부처에게 등불을 공양하는 의식에서 유래한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문화 행사이자 축제다. 신라시대부터 관련 기록이 전하며, 고려시대에는 팔관회와 함께 중요한 국가행사로 발전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로서의 위상이 약화되었지만 민간의 등불 풍속으로 이어졌으며, 현대에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대규모 문화축제로 발전했다.
한자로는 燃燈會라고 표기한다. 연등(燃燈)은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며, 회(會)는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 따라서 연등은 단순히 어두운 장소를 밝히는 행위가 아니라 무지와 번뇌를 없애고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려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연등회는 이러한 불교적인 전통에 기존의 농경사회에서 행해지던 풍년기원과 달맞이, 공동체적인 축제문화 등이 결합하면서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신라에서는 866년(경문왕 6년)과 890년(진성여왕 4년)에 국왕이 황룡사에서 연등을 관람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에 국가적인 관등행사가 시행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고려에서는 태조 왕건이 후손들에게 남겼다고 전해지는 《훈요 10조》 제6조에서 연등회를 팔관회와 함께 중요한 국가행사로 강조했다. 훈요에서는 연등회를 부처를 섬기는 행사라고 설명했으며, 후대의 국왕들이 이를 함부로 폐지하거나 변경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고려 초기의 정기 연등회는 음력 1월 15일인 정월 대보름에 개최되었다. 이후 성종 시대에 중단되었다가 현종 시대에 부활하면서 주로 음력 2월 15일에 개최되었다.
따라서 고려의 정기 연등회는 오늘날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을 중심으로 개최되는 연등회와 날짜와 행사 성격에 차이가 있었다.
고려의 연등회는 국왕과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국가의례였으며, 궁궐과 사찰, 도성의 거리에 수많은 등불을 밝히고 음악과 춤, 연회를 개최했다. 또한 국왕이 고려의 건국자 태조 왕건을 기리는 의례를 진행하는 등 왕조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정치적인 행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등회는 고려시대에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개최된 것은 아니었다. 국왕과 왕실의 기일,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 사찰의 행사 등에 따라 개최 시기와 규모가 달라졌으며, 별도의 특별 연등회도 개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국가의례가 정비되면서 고려식 국가 연등회가 축소·중단되었다. 그러나 부처님오신날에 등을 밝히는 민간의 풍속은 이어졌으며, 어린이들이 연등을 제작하고 집집마다 등을 다는 문화도 발전했다.
현대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을 비롯한 여러 불교 종단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연등행렬이 이루어진다. 서울의 종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전통등 전시와 관불의식, 연등행렬, 문화공연과 시민 참여행사가 개최된다.
2012년 4월 6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국가무형유산이라는 명칭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어 2020년 12월 16일에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연등회가 불교적인 의례에서 출발했지만 종교와 국적, 나이와 사회적인 지위에 관계없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축제로 발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1]
오늘날의 연등회는 불교신자들의 종교적인 행사이면서도 일반 시민과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한마디로 고려시대에는 국왕과 국가가 주관하던 대규모 불교 의례였고, 오늘날에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면서 누구나 함께 등불을 밝히는 문화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기본 정보
| 연등회 | |
|---|---|
| 한자 | 燃燈會 |
| 영문 명칭 | Yeondeunghoe, Lotus Lantern Festival |
| 행사 성격 | 불교의례, 국가의례, 전통문화축제 |
| 종교적인 기원 | 불교의 등공양 |
| 관련 국가 | 신라, 고려, 조선, 대한민국 |
| 신라시대 기록 | 866년·890년 황룡사 관등행사 |
| 고려시대 | 팔관회와 함께 국가적인 정기 행사로 시행 |
| 고려 초기 개최일 | 음력 1월 15일 |
| 고려 현종 이후 | 주로 음력 2월 15일 |
| 현대의 개최 시기 |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 전후 |
| 대표적인 상징 | 연꽃등, 등불, 연등행렬 |
| 주요 행사 | 관불의식, 어울림마당, 연등행렬, 회향한마당, 전통문화마당 |
| 주요 개최 지역 | 서울 종로, 조계사 일대 및 대한민국 각지 |
| 주요 주관 단체 | 연등회보존위원회, 불교계 봉축위원회 등 |
| 국가무형유산 지정 | 2012년 4월 6일 |
| 지정 당시 번호 |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 |
| 유네스코 등재 | 2020년 12월 16일 |
| 유네스코 분류 |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
| 유네스코 등재 번호 | 00882 |
| 관련 행사 | 팔관회, 부처님오신날 |
| 주요 사료 | 《삼국사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
| 공식 홈페이지 | 연등회 |
명칭
연등회는 한자로 燃燈會라고 표기한다.
연(燃)은 불을 붙이거나 태운다는 뜻이고, 등(燈)은 등불을 의미한다. 따라서 연등이라는 표현은 등불을 밝힌다는 의미다.
연등회는 사람들이 모여 등불을 밝히고 부처에게 공양하는 행사라는 뜻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연등회는 단순히 사찰에 등불을 밝히는 의례에 그치지 않았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국가적인 제사와 국왕의 행차, 대규모 연회와 음악공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등과 관등
연등(燃燈)은 등불을 밝히는 행위를 의미한다.
반면 관등(觀燈)은 등불을 바라보거나 구경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연등이 등불을 밝히는 행위에 중점을 둔다면 관등은 이미 밝혀진 등불을 감상하는 행위에 가깝다.
신라시대의 역사기록에는 국왕이 황룡사에서 등불을 관람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러한 기록은 연등회가 종교적인 공양의식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등불을 감상하는 문화적인 행사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연등회와 연등행렬
오늘날에는 연등회와 연등행렬이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된다.
그러나 두 표현은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다.
연등회는 관불의식과 연등행렬, 여러 문화공연과 체험행사 등을 포함하는 축제 전체를 의미한다.
반면 연등행렬은 참가자들이 직접 등을 들고 거리를 이동하는 행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현대 연등회의 가장 유명한 행사가 연등행렬이라고 해서 연등회 전체가 연등행렬 하나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종교적인 의미
불교에서 등불은 부처의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등불이 어두운 장소를 밝히듯이 부처의 가르침은 무지와 번뇌를 없애고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이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부처에게 등불을 공양하는 행위는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부처의 지혜를 따르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등공양
등공양(燈供養)은 불상이나 불탑 등의 앞에 등불을 밝히며 부처를 공경하는 불교적인 의례다.
불교에서는 꽃과 향, 등불과 음식 등을 부처에게 바치는 여러 형태의 공양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등공양은 부처의 지혜가 인간의 무지와 번뇌를 밝힌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등불을 밝힌다는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를 통해 깨달음과 자비를 실천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불교 경전의 기록
불교의 《법화경》에는 부처에게 등불을 공양하는 행위의 공덕을 설명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한 불교의 여러 경전과 설화에서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을 부처의 가르침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종교적인 관념은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래되면서 중국과 한국, 일본 등의 등불 공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꽃의 상징
현대 연등회에서는 연꽃 모양의 등이 대표적인 상징으로 사용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특징 때문에 불교에서 청정함과 깨달음을 상징하는 식물로 여겨진다.
따라서 연꽃등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라는 의미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연꽃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그러나 연등회에 사용되는 모든 등이 반드시 연꽃 모양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연등회에서는 동물과 인물, 건축물과 여러 상징적인 형상을 이용한 다양한 등이 제작된다.
신라시대
연등회의 역사는 신라시대의 불교문화와 연결된다.
신라는 불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한 이후 여러 형태의 불교의례와 사찰행사를 개최했다.
또한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농경과 풍년기원, 달맞이와 산천신앙 등의 전통적인 문화가 불교적인 의례와 결합했다.
황룡사의 관등행사
《삼국사기》에는 신라 국왕이 황룡사에서 연등을 관람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866년(경문왕 6년) 정월 보름과 890년(진성여왕 4년) 정월 보름에 국왕이 황룡사에서 등불을 관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신라 후기의 연등행사가 국왕이 직접 참여하는 국가적인 의례였음을 보여준다.
황룡사는 신라 왕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중요한 사찰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불교적인 의례가 시행되던 장소였다.
따라서 국왕이 황룡사에서 연등을 관람했다는 사실은 등불을 밝히는 행사가 단순한 민간의 종교적인 풍습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월 보름의 의미
정월 보름은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날로 여겼다.
또한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달과 별, 자연현상과 관련된 다양한 신앙이 존재했다.
이러한 풍습은 불교의 등공양과 결합하면서 연등행사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신라의 연등행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모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월 대보름의 모든 풍속이 불교의 연등회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팔관회와의 관계
신라에서는 팔관회도 국가적인 종교행사로 시행되었다.
팔관회는 불교의 팔관재계에서 유래했으며, 신라에서는 전몰자 추모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로 발전했다.
연등회와 팔관회는 모두 불교와 관련된 국가적인 행사였지만 종교적인 기원과 의례의 내용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연등회가 부처에게 등불을 공양하는 의식에서 출발했다면, 팔관회는 불교의 여덟 가지 계율을 지키는 수행전통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두 행사는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동일한 행사라고 볼 수는 없다.
고려시대
연등회는 고려시대에 국가적인 정기 행사로 발전했다.
고려의 국왕들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했으며, 국가적인 제사와 의례를 통해 왕조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 과정에서 연등회는 팔관회와 함께 중요한 국가행사로 자리 잡았다.
태조 왕건의 연등회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불교를 국가의 중요한 정신적 기반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다.
그는 여러 사찰을 건립하고 국가적인 불교의례를 개최했으며, 불교를 통해 왕조의 안녕과 정치적인 안정을 기원했다.
특히 태조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훈요 10조》에서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중요한 국가행사로 강조했다.
훈요 10조 제6조
훈요 10조 제6조에서는 연등회를 부처를 섬기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원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其燃燈, 所以事佛也.
이는 연등회가 부처를 섬기기 위한 행사라는 의미다.
이어 팔관회는 하늘과 산천, 용신 등을 섬기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분은 고려에서 연등회와 팔관회가 서로 다른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태조는 후대의 신하들이 이러한 행사를 함부로 늘리거나 줄이는 일을 경계했다.
또한 국왕과 신하들이 함께 국가적인 의례에 참여함으로써 왕조의 안녕과 정치적인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려 연등회의 개최 시기
고려의 연등회는 항상 오늘날처럼 음력 4월 8일에 개최된 것이 아니었다.
고려 초기에는 음력 1월 15일에 개최되었으며, 현종 이후에는 주로 음력 2월 15일에 열렸다.
또한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음력 4월 8일의 연등도 별도로 시행되었다.
| 시대 | 주요 개최 시기 | 특징 |
|---|---|---|
| 신라 | 음력 1월 15일 | 황룡사에서 국왕이 관등행사에 참여 |
| 고려 초기 | 음력 1월 15일 | 상원연등회 |
| 987년 이후 | 정기 국가행사 중단 | 성종의 종교·국가의례 개혁 |
| 현종 이후 | 주로 음력 2월 15일 | 이월연등회 |
| 고려 중·후기 | 음력 1월·2월 15일 및 특별한 날 | 국왕과 왕실의 기일, 국가행사에 따라 조정 |
| 고려 후기 | 음력 4월 8일 연등도 확산 |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는 연등 풍속 |
| 조선시대 | 음력 4월 8일 중심 | 민간의 초파일 연등 풍속이 발전 |
| 현대 | 음력 4월 8일 전후 |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회 |
상원연등회
상원연등회(上元燃燈會)는 음력 1월 15일에 개최한 연등회를 의미한다.
상원(上元)은 정월 대보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고려 초기에는 국왕과 관료, 일반 백성들이 정월 대보름을 맞아 등불을 밝히고 불교의례에 참여했다.
《고려사》에는 왕궁과 도성에서 지방의 향과 읍에 이르기까지 정월 보름에 이틀 동안 등불을 밝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연등회가 수도의 왕실과 중앙 관료들만 참여하던 행사가 아니라 지방사회에서도 시행되는 행사였음을 보여준다.
이월연등회
이월연등회(二月燃燈會)는 음력 2월 15일에 개최한 연등회를 의미한다.
고려 현종 시대에는 정기적인 연등회를 2월 15일에 개최하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이후 여러 국왕의 재위기간 동안 이월연등회가 중요한 국가행사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모든 해에 반드시 2월 15일에 개최된 것은 아니었다.
왕실의 기일과 명절,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 등에 따라 연등회의 날짜가 변경되기도 했다.
사월초파일 연등
음력 4월 8일은 전통적으로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고려에서는 이 날짜에도 별도의 연등행사가 이루어졌다.
《고려사》에는 의종 시대에 백선연이 4월 8일 등불을 밝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또한 공민왕은 직접 초파일의 연등행사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풍속은 고려 후기에 일반 백성들에게도 확산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부처님오신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연등회는 고려 초기의 상원연등회뿐 아니라 고려 후기에 확산된 사월초파일 연등의 전통과도 연결되어 있다.[2]
성종의 연등회 중단
성종은 유교적인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국가의 통치체제와 의례를 정비하려 했다.
그는 최승로 등이 제출한 정책 건의를 참고하여 불필요한 국가적인 불교행사와 사찰의 경제적 폐단을 줄이려 했다.
987년의 중단
987년(성종 6년)에는 연등회와 팔관회가 국가적인 정기 행사로서 중단되었다.
연등회는 상당한 비용과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며, 행사 준비과정에서 백성들에게 부담이 발생할 수 있었다.
성종은 이러한 행사가 지나치게 번잡하고 유교적인 국가의례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연등회를 중단했다는 사실이 고려에서 모든 불교의례와 신앙활동이 폐지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려에서는 이후에도 불교가 왕실과 귀족, 일반사회에서 중요한 종교적인 역할을 유지했다.
시무 28조와의 관계
최승로는 982년 성종에게 시무 28조를 올렸다.
그는 불교 자체의 폐지를 주장하기보다 과도한 불교행사와 사찰의 경제적인 폐단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백성들의 노동력을 지나치게 동원하거나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책적인 방향은 성종의 연등회 중단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승로가 모든 불교행사의 폐지를 직접적으로 명령했다거나 불교 자체를 없애려 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현종의 연등회 부활
1010년(현종 원년) 윤2월에는 연등회가 다시 복구되었다.
이는 성종 시대의 중단 이후 약 23년 만에 이루어진 변화였다.
《고려사》 권69의 상원연등회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顯宗元年閏二月, 復燃燈會.
이는 현종 원년 윤2월에 연등회를 복구했다는 뜻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거란의 군사적인 위협과 국내의 정치적인 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1011년 청주 행궁
1010년 거란의 제2차 침입이 발생하자 현종은 수도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했다.
그는 이듬해인 1011년 나주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북쪽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현종은 청주의 행궁에서 음력 2월 15일 연등회를 개최했다.
이후 2월 보름에 연등회를 개최하는 관례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사실은 연등회의 복구 결정과 실제 행사 개최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1010년에는 연등회의 복구가 기록되었고, 1011년에는 청주 행궁에서 개최한 연등회와 이후 2월 보름 정례화에 관한 기록이 존재한다.
관련 기록은 국사편찬위원회의 《고려사》 예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3]
고려 왕실의 연등회
고려시대의 연등회는 불교적인 종교행사이면서 왕실의 정치적인 권위를 표현하는 국가의례이기도 했다.
국왕은 사찰에 행차하여 부처에게 공양하고 선왕을 기리는 의례를 진행했다.
또한 문무백관들의 하례를 받았으며, 궁궐에서 음악과 춤, 연회를 개최했다.
봉은사 행차
봉은사는 고려 태조 왕건을 기리기 위한 중요한 사찰이었다.
1038년(정종 4년)에는 국왕이 연등회 기간에 봉은사에 행차하여 예불하고 태조를 기리는 의례를 진행했다.
이러한 관례는 이후 연등회의 중요한 절차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는 연등회가 부처를 공양하는 행사이면서 동시에 고려의 건국자를 기리고 현재의 국왕이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사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국왕과 신하들의 참여
연등회에는 국왕과 문무백관, 왕실의 구성원들이 참여했다.
궁궐과 주요 사찰에서는 각종 의례가 진행되었으며, 행사에서는 연회와 음악공연도 개최되었다.
이는 국가적인 의례를 통해 국왕과 신하들이 함께 왕조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연등회가 동일한 규모와 절차로 개최되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시대와 국왕의 정책, 재정상황과 왕실의 행사에 따라 연등회의 규모와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연등도감
고려에서는 연등회를 준비하고 운영하기 위한 연등도감(燃燈都監)이 설치되었다.
도감은 특정한 국가사업이나 행사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을 의미한다.
연등도감은 행사에 필요한 인력과 물품, 여러 준비작업을 담당했다.
다만 연등도감이 정확히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관청의 존재는 연등회가 국가적인 행정과 재정을 동원하는 상당한 규모의 행사였음을 보여준다.
고려의 특별 연등회
고려에서는 정기적인 연등회 외에도 특별한 국가행사나 왕실의 경사가 발생했을 때 연등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행사에는 사찰의 건립과 불상의 조성, 국가적인 기도와 왕실의 의례 등이 포함되었다.
흥왕사 낙성 연등회
1067년(문종 21년)에는 흥왕사가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성대한 연등회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서는 5일 동안 밤낮으로 등불을 밝히고 여러 의례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흥왕사는 고려 왕실이 중요하게 후원한 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흥왕사의 낙성과 관련된 연등회는 불교적인 공양의식이면서 왕실의 종교적인 권위와 재정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행사이기도 했다.
1073년 봉은사의 연등
1073년에는 봉은사에서 불상을 새롭게 조성한 것을 기념하여 연등회를 개최했다.
당시에는 불상을 조성한 뒤 이를 경축하는 의례가 진행되었으며, 밤늦도록 등불을 감상하고 연회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기록은 연등회가 국가적인 정기 행사 외에도 사찰의 중요한 불교행사에서 개최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만등회
만등회(萬燈會)는 이름 그대로 매우 많은 등불을 밝히는 행사다.
고려에서는 1만 개의 등을 밝히고 부처에게 공양하는 만등회가 개최되었다.
1166년(의종 20년)에는 만등회가 개최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러한 행사는 고려 왕실의 적극적인 불교 후원과 화려한 의례문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만등회가 개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고려의 연등회에서 언제나 정확히 1만 개의 등을 사용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만등회는 특별한 규모와 의미를 가진 등불 공양행사였다.
고려 후기의 사월초파일
고려 후기에는 음력 4월 8일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여 등을 밝히는 풍속이 널리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사찰과 왕실뿐 아니라 일반 주민과 어린이들도 연등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했다.
백선연의 기록
의종 시대에는 백선연이 4월 8일 등불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이는 고려시대의 사월초파일 연등에 관한 비교적 이른 구체적인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이 곧 한국에서 음력 4월 8일 처음으로 등불을 밝힌 사건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보다 앞선 시기에도 비슷한 의례가 있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현재 전해지는 기록만으로 모두 확인할 수는 없다.
공민왕의 초파일 연등
공민왕은 사월초파일에 직접 연등행사를 개최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에는 사월초파일을 기념하여 등을 밝히는 풍속이 일반 백성들에게 더욱 확산되었다.
따라서 고려 후기의 사월초파일 연등은 오늘날 부처님오신날 연등회의 역사적인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호기놀이
호기놀이(呼旗)는 어린이들이 사월초파일 연등을 준비하기 위해 비용과 재료를 모으던 풍속이다.
어린이들은 종이를 오려서 만든 작은 기를 대나무 장대에 매달고 마을이나 도성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러 집을 방문하면서 쌀이나 베 등의 물품을 받았다.
이렇게 모은 재료와 물품은 연등을 제작하거나 행사를 준비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풍속은 연등회가 왕실과 사찰의 종교행사에서 벗어나 어린이와 일반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속적인 축제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1392년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했다.
조선의 건국세력은 유교적인 정치질서를 바탕으로 국가제도와 의례를 정비했다.
이에 따라 고려에서 국가적인 정기 행사로 시행되었던 연등회와 팔관회는 정치적인 위상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불교적인 연등 풍속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국가 연등회의 축소
조선 전기에는 고려의 국가적인 불교행사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려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1415년(태종 15년)에는 초파일 연등을 중지시키는 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정월 연등회와 관련된 국가적인 행사는 점차 기록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조선의 국왕과 관료들이 불교를 억제했다고 해서 모든 민간의 불교신앙과 연등 풍속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민간의 등불 풍속
조선시대에도 음력 4월 8일에는 집집마다 등불을 밝히는 풍속이 이어졌다.
사찰에서는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는 법회를 열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등을 달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이러한 풍속은 고려시대의 국가적인 연등회와 비교하면 행사에 참여하는 주체와 성격이 달라진 것이었다.
고려에서는 국왕과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조선에서는 사찰과 민간의 종교적인 활동이 더욱 중요한 전승의 기반이 되었다.
세시풍속으로서의 연등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연등과 관등에 관한 여러 풍속이 등장한다.
어린이들이 등을 제작하고 여러 집에서 연등을 밝히며 밤에 등불을 구경하는 풍속이 전해졌다.
이러한 기록은 연등이 국가적인 행사에서 민간의 생활문화로 전환되어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연등이 단순한 종교적인 공양행위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적인 행사였음을 보여준다.
근현대의 연등회
현대의 연등회는 불교적인 신앙과 전통적인 등불 제작기술, 대규모 시민 참여행사가 결합한 축제로 발전했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의 노력으로 연등행렬과 전통문화행사가 확대되었다.
1955년의 연등행렬
6·25 전쟁 이후인 1955년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연등행렬이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조계사와 동국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관련 행사가 이루어졌다.
서울 도심에서는 조계사와 종로, 을지로와 시청 등을 연결하는 연등행렬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행사는 현대적인 연등행렬이 다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62년 통합 조계종 출범
1962년 통합 조계종이 출범한 이후 연등회는 보다 조직적인 불교계 행사로 발전했다.
여러 사찰과 불교단체, 학생단체들이 행사에 참여했으며, 연등행렬의 규모도 점차 확대되었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지정
1975년에는 부처님오신날이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는 부처님오신날과 관련된 불교행사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연등회의 규모가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공휴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모든 국민에게 특정한 종교의식에 참여할 의무가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처님오신날은 불교의 종교적인 기념일이면서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로 운영되고 있다.
1976년 여의도 연등행렬
1976년부터는 서울의 여의도광장에서 조계사까지 이어지는 연등행렬이 진행되었다.
이는 많은 불교신자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도심 행사로 발전했다.
그러나 당시의 연등행렬은 오늘날의 종로 중심 행사와 장소와 이동 경로가 달랐다.
1990년대의 변화
1990년대에는 연등회의 행사 구성과 운영방식에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1996년 이후 봉축위원회의 상설 운영과 종로 중심의 연등행렬이 정착되었다.
또한 전통문화마당과 회향한마당 등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연등회를 단순한 불교 종단의 행사에서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축제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국대학교의 불교문화포털은 1955년의 연등행렬을 현대 연등회의 주요 출발점으로 평가하고, 1996년 이후 본격적인 축제화가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4]
현대 연등회의 구성
오늘날의 연등회는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하여 여러 행사로 구성된다.
대표적으로 관불의식과 어울림마당, 연등행렬과 회향한마당, 전통문화마당 등이 있다.
그러나 행사 일정과 장소, 구체적인 내용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다.
관불의식
관불의식(灌佛儀式)은 아기 부처의 형상에 향기로운 물 등을 부으며 탄생을 축하하는 불교의례다.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마음의 번뇌를 씻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관불의식은 현대 연등회의 중요한 종교적인 행사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모든 시민 참여자가 관불의식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울림마당
어울림마당은 연등행렬에 앞서 참가자들이 함께 모여 여러 공연과 문화행사를 즐기는 행사다.
불교의 종교적인 의미를 나누는 동시에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화합을 도모한다.
이러한 행사는 연등회가 단순히 등불을 들고 거리를 걷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축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등행렬
연등행렬은 현대 연등회를 대표하는 행사다.
참가자들은 직접 제작한 연꽃등과 다양한 전통등을 들고 서울의 종로 등 도심을 이동한다.
행렬에는 불교신자와 승려뿐 아니라 학생과 일반 시민, 외국인 등 여러 사람들이 참여한다.
또한 작은 개인 연등 외에도 동물과 인물, 불교적인 상징을 형상화한 대형 장엄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행렬은 종교적인 공양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전통적인 등불 제작기술과 거리문화가 결합한 축제다.
회향한마당
회향한마당은 연등행렬 이후 참가자들이 함께 모여 행사를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이다.
회향(回向)은 불교에서 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회향한마당은 연등회의 종교적인 의미를 참가자들의 화합과 공동체적인 즐거움으로 연결하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전통문화마당
전통문화마당에서는 시민들이 연등과 관련된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연꽃등과 전통등 제작, 전통공예와 공연, 다양한 불교문화 체험 등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행사는 불교신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 있으며, 어린이와 외국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연등회는 종교적인 의례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적인 행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축제로 운영되고 있다.
전통등 제작
연등회에서 사용하는 전통등은 여러 재료와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한다.
대표적인 재료로는 대나무와 한지, 풀과 여러 장식재료 등이 있다.
전통적으로는 대나무 등으로 등불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 다양한 형태의 등을 제작했다.
한지와 대나무
한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종이로, 등불을 은은하게 투과시키는 특징이 있다.
대나무는 가볍고 휘어지는 성질이 있어 등의 골격을 제작하는 데 활용된다.
이러한 재료를 사용하면 여러 형태의 등불을 제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행사 규모와 안전, 제작방식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재료와 조명기술도 함께 활용된다.
따라서 현재의 연등회에서 사용하는 모든 등이 전통적인 재료만으로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연꽃등
연꽃등은 연꽃의 꽃잎을 형상화한 등이다.
불교에서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을 상징하므로 연꽃등은 현대 연등회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연꽃등은 비교적 작은 개인용 등부터 대규모 장식등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된다.
장엄등
장엄등은 여러 형태를 크게 제작하여 행렬이나 행사장을 장식하는 등이다.
장엄등에는 불교적인 인물과 신화적인 동물, 한국의 전통적인 상징 등이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대형 등은 제작 과정에서 구조적인 안정성과 조명, 운반과 안전 등이 중요하다.
따라서 전통적인 공예기술과 현대적인 제작기술이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국가무형유산 지정
2012년 4월 6일 연등회는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국가유산 관련 제도의 명칭 변경에 따라 국가무형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지정은 연등회가 단순한 일회성 행사나 종교단체의 축제를 넘어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온 전통문화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지정의 의미
무형유산은 건축물이나 유물처럼 물리적인 형태가 남아 있는 문화유산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과 기술, 의례와 공연 등을 통해 전승되는 문화유산을 의미한다.
연등회는 전통적인 등 제작기술과 불교의례, 연등행렬과 공동체적인 축제문화 등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물건이나 특정한 건물이 아니라 행사와 기술, 공동체의 참여가 함께 문화유산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보존과 전승
연등회의 보존에는 연등회보존위원회 등 관련 단체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등 제작기술과 행사에 관한 기록을 수집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여러 지역의 사찰과 단체들이 연등회에 참여하여 관련 문화를 전승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보존이 반드시 과거의 행사방식을 변화 없이 그대로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연등회는 신라와 고려, 조선과 현대를 거치면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개최 시기, 규모와 목적 등이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 자체도 연등회가 오랜 기간 사회와 함께 발전해 온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2020년 12월 16일 연등회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공식 영문 명칭은 Yeondeunghoe, lantern lighting festival in the Republic of Korea다.
이 등재는 제15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
등재 배경
연등회는 불교적인 종교행사에서 출발했지만 현대에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발전했다.
특히 참가자들이 직접 등을 만들고 행렬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가 아니라 공동체가 직접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행사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러 세대가 등 제작기술과 행사의 의미를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유네스코의 평가
유네스코는 연등회의 포용성과 공동체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국적과 종교, 나이와 장애 여부 등 여러 사회적인 차이를 넘어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사회적인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의 설명에 따르면 연등회는 불교적인 의례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봄철의 문화축제로 발전했다.[5]
문화유산 등재의 의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연등회가 전 세계의 모든 등불축제보다 우수하다는 순위를 매긴 결과는 아니다.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제도는 각 지역의 공동체가 오랜 기간 전승해 온 문화적인 관습과 기술, 축제 등을 보존하고 문화적인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제도다.
따라서 연등회의 등재는 해당 축제가 한국의 중요한 무형유산이며, 관련 기술과 의례를 계속 전승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팔관회와의 비교
연등회와 팔관회는 고려를 대표하는 두 가지 국가적인 종교행사였다.
두 행사는 모두 불교와 관련되어 있으며 태조 왕건이 훈요 10조에서 후대의 국왕들에게 유지하도록 당부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기원과 개최 시기, 주요 의례에는 차이가 존재했다.
| 구분 | 연등회 | 팔관회 |
|---|---|---|
| 한자 | 燃燈會 | 八關會 |
| 종교적인 기원 | 불교의 등공양 | 불교의 팔관재계 |
| 주요 상징 | 등불과 부처의 지혜 | 계율과 국가의 안녕 |
| 고려 초기 개최일 | 음력 1월 15일 | 개경 음력 11월 15일 |
| 고려 후기 | 주로 음력 2월 15일, 별도 초파일 연등도 시행 | 개경 11월, 서경 10월 |
| 주요 의례 | 등공양, 관등, 불교의례, 왕실의 연회 | 불교·산천신앙, 국가의례, 외국인의 조하 |
| 국가적인 의미 | 부처를 공양하고 왕조의 안녕을 기원 | 산천과 하늘의 신령을 섬기고 왕조의 정통성을 표현 |
| 성종 시대 | 중단 | 중단 |
| 현종 시대 | 부활 | 부활 |
| 조선시대 | 민간의 초파일 연등 풍속으로 전승 | 국가적인 정기 행사로서 소멸 |
| 현대 | 대규모 문화축제로 전승 | 고려시대와 같은 국가의례로 전승되지 않음 |
| 유네스코 등재 | 2020년 인류무형문화유산 | 해당 없음 |
종교적인 차이
연등회는 등불을 통해 부처의 지혜와 깨달음을 기리는 행사였다.
반면 팔관회는 불교의 여덟 가지 계율을 지키는 전통에서 출발했으며, 고려시대에는 하늘과 산천의 신령 등을 섬기는 국가의례로 발전했다.
따라서 두 행사를 모두 불교행사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실제 종교적인 의미는 같지 않았다.
정치적인 차이
연등회는 부처에게 공양하고 국왕과 신하들이 함께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강했다.
반면 팔관회는 외국인들의 조하와 물품 봉정, 국가적인 외교질서와 왕조의 정통성을 표현하는 기능이 특히 강조되었다.
그러나 두 행사의 역할이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연등회 역시 국왕의 권위와 왕조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행사였기 때문이다.
후대의 전승
연등회와 팔관회의 가장 큰 차이는 후대의 전승과정에서 나타난다.
팔관회는 조선 건국 이후 국가적인 정기 행사로서 사라졌지만, 연등회는 민간의 사월초파일 풍속으로 이어졌다.
이후 현대에는 대규모 연등행렬과 시민 참여행사로 발전했으며, 국가무형유산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문화적인 의미
종교와 공동체
연등회는 불교적인 의례이면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적인 관계를 확인하는 행사다.
참가자들이 직접 등을 만들고 행렬에 참여하면서 같은 축제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모든 참가자가 반드시 불교신자이거나 불교적인 교리를 믿는 것은 아니다.
현대 연등회에서는 전통문화와 공예, 거리공연에 관심을 가진 시민과 관광객들도 함께 참여한다.
전통공예의 전승
연등회에서는 한지와 대나무 등을 사용한 전통적인 등 제작기술이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단순히 등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인 미술과 공예, 상징과 장식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현대적인 재료와 조명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등을 제작하면서 전통문화의 변화와 발전도 나타난다.
국제적인 문화교류
현대 연등회에는 여러 나라의 참가자와 관광객들이 참여한다.
이는 한국의 불교문화와 전통적인 등 제작기술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기회가 된다.
또한 외국의 불교문화와 다양한 등불축제를 비교하고 교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모든 등불축제가 한국의 연등회에서 직접 유래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등불을 이용한 종교의례와 축제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 여러 문화권에서도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계와 논쟁
국가재정의 부담
고려시대의 연등회는 국가적인 대규모 행사였으므로 상당한 재정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일부 국왕과 관료들은 이러한 행사가 백성들에게 부담을 준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최승로는 과도한 불교행사와 사찰의 경제적인 폐단을 비판했으며, 성종 시대에는 국가적인 연등회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실제 비용과 경제적인 효과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하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연등회가 항상 국가재정을 낭비하기만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종교행사와 공공축제
현대 연등회는 불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축제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종교적인 의미와 문화적인 의미가 함께 존재한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연등회의 불교적인 기원과 종교적인 의미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불교적인 행사라는 사실만으로 다른 종교를 가진 시민들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연등회는 두 성격이 함께 존재하는 행사다.
전통과 현대의 차이
오늘날의 연등회는 전통적인 연등 풍속을 계승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의 연등회와 완전히 동일한 행사는 아니다.
고려의 국가 연등회는 주로 음력 1월 또는 2월 보름에 개최되었으며, 국왕과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국가의례였다.
반면 현대의 연등회는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을 중심으로 개최되며, 불교계와 일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축제다.
따라서 현대 연등회의 역사를 설명할 때에는 연등이라는 문화적 전통이 장기간 이어졌다는 사실과 행사 자체의 시기·형태·성격이 시대별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
주요 연혁
| 연도 | 사건 |
|---|---|
| 551년 | 신라에서 팔관회 등 불교의례가 제도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시기로 전함 |
| 866년 | 신라 경문왕이 황룡사에서 연등을 관람 |
| 890년 | 신라 진성여왕이 황룡사에서 연등을 관람 |
| 918년 | 왕건이 고려 건국 |
| 943년 | 《훈요 10조》 제6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유지 강조 |
| 고려 초기 | 정월 대보름에 국가적인 상원연등회 개최 |
| 987년 | 성종 시대 국가 연등회 중단 |
| 1010년 윤2월 | 현종이 연등회 복구 |
| 1011년 2월 | 현종이 청주 행궁에서 연등회 개최, 이후 2월 보름 정례화 |
| 1038년 | 국왕이 연등회 때 봉은사에서 태조를 기리는 의례 진행 |
| 1067년 | 흥왕사 낙성기념 연등회 개최 |
| 1073년 | 봉은사에서 불상 조성 기념 연등회 개최 |
| 1166년 | 의종 시대 만등회 개최 |
| 고려 후기 | 사월초파일의 연등 풍속이 일반 백성들에게 확산 |
| 1392년 | 조선 건국, 국가적인 불교의례 축소 |
| 1415년 | 조선 태종이 초파일 연등 중지 명령 |
| 조선 후기 | 민간의 초파일 연등과 관등 풍속 전승 |
| 1955년 | 현대 연등행렬의 중요한 재개 |
| 1962년 | 통합 조계종 출범 이후 종단 차원의 연등회 운영 확대 |
| 1975년 | 부처님오신날이 대한민국 법정 공휴일로 지정 |
| 1976년 | 여의도광장과 조계사를 연결하는 대규모 연등행렬 시행 |
| 1996년 | 종로 연등행렬과 시민 참여 문화행사의 확대 |
| 2012년 4월 6일 | 연등회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 |
| 2020년 12월 16일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
여담
- 연등회는 불교에서 부처에게 등불을 공양하는 의식에서 유래했다.
- 등불은 불교에서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 한자로는 燃燈會라고 표기한다.
- 현대 연등회의 대표적인 상징은 연꽃등이다.
- 연꽃은 불교에서 청정함과 깨달음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 그러나 모든 연등이 반드시 연꽃 모양인 것은 아니다.
- 신라시대에는 황룡사에서 국왕이 직접 연등을 관람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 866년 경문왕과 890년 진성여왕의 관등 기록이 대표적이다.
- 고려에서는 팔관회와 함께 중요한 국가행사로 시행되었다.
- 훈요 10조 제6조에서 태조 왕건은 연등회와 팔관회의 유지를 강조했다.
- 고려 초기의 연등회는 오늘날의 부처님오신날이 아니라 정월 대보름에 개최되었다.
- 현종 이후에는 주로 음력 2월 15일에 개최되었다.
- 따라서 고려시대의 정기 연등회와 현대의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개최 시기가 다르다.
- 987년 성종은 국가적인 연등회를 중단시켰다.
- 1010년 현종 시대에 연등회가 복구되었다.
- 1011년에는 청주의 행궁에서 연등회가 개최되었다.
- 고려의 연등회에는 국왕과 문무백관, 일반 백성들이 참여했다.
- 궁궐과 사찰, 도성의 거리 곳곳에 많은 등불이 설치되었다.
- 국가적인 의례뿐 아니라 음악과 춤, 연회와 공연도 이루어졌다.
- 국왕이 봉은사에서 태조 왕건을 기리는 의례를 진행하기도 했다.
- 고려시대에는 연등회를 준비하기 위한 연등도감도 설치되었다.
- 그러나 정확한 설치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 사찰의 낙성과 불상의 조성 등을 기념하여 특별한 연등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 1166년 의종 시대에는 1만 개의 등을 밝히는 만등회가 개최되었다.
- 고려 후기에 이르러 사월초파일의 연등 풍속이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확산되었다.
- 어린이들이 연등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호기놀이도 전해졌다.
-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연등회가 축소되었지만 민간의 초파일 연등 풍속은 계속 이어졌다.
- 현대에는 불교신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 외국인들도 행사에 참여한다.
- 1955년의 연등행렬은 현대 연등회가 다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 1975년에는 부처님오신날이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 1996년 이후에는 종로 연등행렬과 전통문화마당 등 시민 참여행사가 확대되었다.
- 2012년에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유네스코는 연등회가 종교와 국적 등의 경계를 넘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포용적인 문화축제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 다만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전 세계의 등불축제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는 순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연등회는 고려의 왕실 불교행사에서 출발하여 조선의 민간 풍속을 거쳐 현대의 국제적인 문화축제로 발전한 대표적인 한국의 전통문화다.
관련 문서
- 불교
- 한국 불교
- 신라
- 신라의 불교
- 고려
- 고려의 불교
- 조선
- 조선의 불교
- 태조(고려)
- 성종(고려)
- 현종(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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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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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