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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기술법에서 넘어옴)
근현대 예술 사조

시대 구분은 둘러보기 편의를 위한 대략적인 분류이며, 여러 예술 사조의 활동 시기와 영향 관계는 서로 겹칠 수 있다.

초현실주의(프랑스어: Surréalisme, 영어: Surrealism)는 꿈·무의식·우연을 통해 일상적 현실의 질서를 새롭게 바라보려 한 예술·문학 운동이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선언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으며, 회화뿐 아니라 글쓰기와 다양한 예술적 실험으로 전개됐다.[1]

핵심은 단순히 ‘이상한 것을 정교하게 그리기’에 있지 않다. 자동기술법으로 떠오르는 형태를 발견하는 방식과 익숙한 사물을 낯선 관계에 놓는 방식 등 여러 접근이 공존했다. 달리의 녹는 시계와 마송의 자동 드로잉이 모두 초현실주의에 속할 수 있는 이유다.[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전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미술·문학 운동으로 꿈, 환상,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의 소재로 다뤘다.

정확히는 1924년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하나의 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2]

ㄴ 두 세계대전 사이는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이지 활동의 끝을 뜻하지 않는다. 초현실주의는 전후에도 여러 지역에서 이어졌다. 파리의 몇몇 남성 화가만으로 운동 전체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국제적인 전개가 있었다.[3]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현실의 규칙에서 벗어나 꿈, 무의식, 우연, 자동적인 사고 같은 것을 통해 더 근원적인 정신세계를 표현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미술가로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등이 있다.

마르크 샤갈도 꿈과 환상 같은 이미지를 많이 사용해서 초현실주의 화가로 묶이는 경우가 있지만, 초현실주의 그룹에 본격적으로 속했던 화가는 아니며 독자적인 화풍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4]

다다와 정신분석의 영향

초현실주의는 기존 예술과 합리성에 도전했던 다다이즘의 실험을 배경으로 발전했다. 또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과 무의식에 관한 논의에서 자극을 받았다. 다만 정신분석 이론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긴 하나의 양식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창작과 정신적 해방의 문제로 확장한 운동에 가깝다.[1]

꿈과 비합리성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작품을 정신질환의 증거나 과학적인 무의식 검사 결과처럼 읽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작가의 예술적 실험과 임상적 판단을 혼동할 필요는 없다.

극사실주의와의 차이

초현실주의랑 극사실주의랑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은근 많다.

ㄴ 이름만 보면 둘 다 "현실을 넘어간다 / 현실을 극도로 그린다"라 헷갈릴 수도 있는데 사실 정반대에 가깝다.

극사실주의는 사진처럼 현실을 존나 정밀하게 묘사하는 쪽이고, 초현실주의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비현실적으로 조합하거나 꿈과 무의식의 이미지를 끌어내는 쪽이다.

쉽게 말해서

“

사과를 사진보다 더 사과같이 그림 → 극사실주의
사과가 하늘에 떠 있고 방 안에 코끼리가 있고 시계가 녹아내림 → 초현실주의

”

정도다.

ㄴ 위의 ‘정반대’는 구분을 돕기 위한 비유다. 정밀한 묘사와 비현실적인 내용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달리처럼 꿈같은 장면을 아주 치밀하게 그리는 초현실주의자도 있다. 따라서 ‘잘 그렸으면 극사실주의, 이상하면 초현실주의’라는 분류법은 통하지 않는다.[5]

자동 기술법

초현실주의 시인과 미술가들이 무의식의 창조적 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기법으로, 의식적인 통제나 이성적인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떠오르는 생각과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프랑스어로는 오토마티슴(Automatisme), 영어로는 Automatic writing/drawing이라고 한다.

ㄴ 더 넓은 개념의 영어 표기는 automatism이며, automatic writing과 automatic drawing은 각각 자동 글쓰기와 자동 드로잉을 가리킨다. 브르통은 의식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표현을 강조했고, 미술가들은 이를 글쓰기 밖의 창작으로도 확장했다.[2]

자유 연상 상태에서 그린 낙서 같은 그림이나 프로타주, 그라타주, 데칼코마니 등의 방법으로 우연히 나타난 형태를 이용하여 작가의 직관적인 반응에 따라 완성했다.

대표적으로 호안 미로나 앙드레 마송 등이 이런 자동기술적인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다만 살바도르 달리처럼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면서도 상당히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그림을 그린 작가도 있었기 때문에 모든 초현실주의 작품이 자동기술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1]

의식의 흐름 기법과의 차이

머한민국과 얼싸해 보이는 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이 있다.

ㄴ 둘 다 인간의 의식 아래쪽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끌어내려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의식의 흐름은 문학에서 인물의 생각이 이어지는 방식을 표현하는 서술기법이고, 자동기술법은 작가가 의식적인 통제를 억제한 채 직접 창작하는 방법에 가깝다.

ㄴ 의식의 흐름에는 인물이 의식적으로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의식 아래쪽’만을 다룬다는 뜻은 아니다. 완성된 글이 즉흥적으로 보이더라도 작가가 치밀하게 구성했을 수 있으므로, 서술 효과와 실제 제작 과정을 구별하면 된다.

프로타주

종이나 캔버스를 나무, 돌, 천 같은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 놓고 연필 등으로 문질러 무늬를 얻는 기법이다.

막스 에른스트가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마디로 어릴 때 동전 위에 종이 놓고 연필로 존나 문질러서 동전 모양 뽑던 그것의 예술 버전이다.

ㄴ 에른스트의 경우 표면의 무늬를 그대로 기록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안에서 풍경이나 생물 같은 형상을 발견해 화면으로 발전시켰다. 보통 종이 위에 연필로 문질러 얻는 프로타주와, 이 원리를 회화로 확장한 그라타주를 구분해 설명한다.[6]

그라타주

물감을 칠한 캔버스 표면을 긁어내 우연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것도 막스 에른스트가 즐겨 사용했다.

그의 그라타주에서는 질감 있는 물체 위에 캔버스를 놓고 물감층을 긁어 아래 표면의 무늬가 드러나게 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단순히 완성된 그림에 흠집을 내는 기법이라는 설명보다 구체적인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6]

데칼코마니

종이나 캔버스에 물감을 바른 뒤 다른 면을 눌러 붙였다가 떼어 우연히 만들어진 형태를 작품에 이용하는 기법이다.

어릴 때 종이 반 접어서 한쪽에 물감 쳐바르고 꾹 눌렀다가 펼치는 그것 맞다.

다만 반으로 접어 좌우대칭을 만드는 것만 데칼코마니는 아니다. 종이나 유리 등 서로 다른 면 사이에서 물감을 눌러 전사하는 방식도 포함한다. 초현실주의에서는 오스카르 도밍게스가 1930년대에 활용했으며 에른스트 등도 받아들였다.[6][7]

데페이즈망(전치, 전위법)

일반적으로 현실적 사물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본래의 용도, 기능, 의미를 지우고 그것이 놓일 수 없는 낯선 장소에서 조합함으로써 초현실적인 환상을 창조해 내는 기법이다.

프랑스어 dépaysement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르네 마그리트가 존나 잘 써먹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사과, 중절모, 파이프, 사람, 구름 같은 것을 그리는데

“

사과를 방만하게 크게 만들어 사람 얼굴을 가림
밤거리 위 하늘만 대낮임
사람들이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짐

”

같은 식으로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ㄴ 사과 예시는 두 작품의 이미지를 섞은 표현이다. 《사람의 아들》(1964)은 사과가 남자의 얼굴 앞을 가리는 작품이고, 《듣는 방》(1952)은 거대한 사과가 방을 채우는 작품이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과를 방 크기로 키운 하나의 그림을 뜻하지는 않는다.[8][9]

밤거리와 낮하늘의 공존은 《빛의 제국》 연작을, 중절모 쓴 남자들의 반복은 《골콩드》(1953)를 떠올리게 한다. 후자의 사람들은 공중에 정지한 듯 보이기도 하므로 ‘비처럼 떨어진다’는 표현은 장면을 쉽게 설명한 비유로 읽으면 된다.[10][11]

재료 자체는 존나 평범한데 배치가 이상해서 뇌에 버그가 걸리는 방식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같은 이미지 역시 현실의 사물을 비현실적으로 변형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의 대표 사례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그리트식 데페이즈망과는 표현 방식이 조금 다르다.

다만 이 차이를 ‘달리는 변형만 하고 마그리트는 배치만 한다’는 배타적인 구분으로 굳힐 필요는 없다. 크기·성질·위치·맥락의 변화는 한 작품 안에서도 겹칠 수 있다.

대표 작품과 감상 포인트

아래 작품은 기법과 이미지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한 예시다.

작가 작품 감상 포인트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1931) 정교한 묘사와 부드럽게 늘어진 시계의 결합[5]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연작 한 화면에 놓인 낮과 밤[10]
르네 마그리트 《듣는 방》(1952) 일상적 사물의 크기를 바꿨을 때 생기는 낯섦[9]
르네 마그리트 《골콩드》(1953) 반복되는 인물과 비현실적인 공간 관계[11]

특징

초현실주의 작품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꿈과 무의식의 이미지
  •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물의 조합
  • 우연성을 이용한 제작
  • 성적 욕망이나 공포 등 억압된 심리의 표현
  • 정상적인 시간·공간 감각의 붕괴
  • 현실적인 묘사법으로 비현실적인 장면을 그리는 방식

이 때문에 그림 자체는 존나 잘 그렸는데 내용이

“

왜 시계가 녹고 있노
왜 사람 얼굴이 사과노
왜 코끼리 다리가 기린보다 기노

”

인 경우가 많다.

정상적으로 그린 이상한 그림.

그게 초현실주의의 맛이다.

ㄴ 다만 이는 환영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사용하는 작품군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 미로나 마송의 자동기술적 작품처럼 추상적 형태에 가까운 경우도 있어, 위 특징이 모든 작품의 필수 체크리스트는 아니다.[1]

전후의 확산과 영향

초현실주의는 유럽에서 시작해 다른 곳으로 일방적으로 복제된 운동만은 아니었다. 여러 지역의 작가들이 각자의 문화와 정치적 상황 속에서 변형하고 발전시켰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Surrealism Beyond Borders》는 카리브해 지역과 시리아 등에서도 전개된 이러한 다양한 흐름을 소개한다.[3]

오늘날 ‘초현실적’이라는 말은 기묘한 이미지 전반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기묘해 보이는 이미지와 역사적 초현실주의 운동에 속하는 작품은 구분할 수 있다. 작품의 제작 시기, 작가의 활동, 사용한 방법을 함께 보면 단순한 인상비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같이 보기

각주

  1. ↑ 1.0 1.1 1.2 1.3 1.4 Surrealis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 ↑ 2.0 2.1 André Breton, MoMA.
  3. ↑ 3.0 3.1 Surrealism Beyond Borders 전시 안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4. ↑ The Visual Language of Marc Chagall, Sotheby’s.
  5. ↑ 5.0 5.1 Salvador Dalí.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MoMA.
  6. ↑ 6.0 6.1 6.2 Portrait of an Artist at Work: Max Ernst’s Surrealist Techniques,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7. ↑ Decalcomania,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8. ↑ René Magritte: Man of Many Hats, Scholastic Art.
  9. ↑ 9.0 9.1 Magritte 학습 자료,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
  10. ↑ 10.0 10.1 Modern Visions of Light, MoMA.
  11. ↑ 11.0 11.1 Golconda (Golconde), 메닐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