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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과 변화
II.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
한국 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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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h Century / 10世紀 / 901년~1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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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역대 황제
1대 태조 대황제 조광윤 ← 2대 태종 광황제 조광의 → 3대 진종 원황제 조항


송나라 태조. 이름은 조광윤.

송나라가 문약했던 것 때문에 얘도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군바리 집안에서 태어난 키는 7척(약 220cm)으로 옛날 기준으로는 장신 현대 기준으로 엄청나게 큰 키이고 큰 키답게 몸은 순수 무골이었고

소싯적엔 저 살벌한 거란 대군하고 다이다이떴던 적 있는 전쟁영웅이다.

ㄴ 조선 이성계도 똑같다 명장이었는데 국가는 문약으로

ㄴ ㅈ랄, 선조 초기까지도 여진족 뚜까패던 게 조선이다. 임진왜란 즈음해서 여러가지 이유로 ㅆ창나서 그렇지

ㄴ여진족이 쳐들어온 횟수만 많았지 실제로는 16세기 중반만 해도 개좆밥이었다. 임진왜란 때 존나게 커져서 나중에 띵나라까지 띨망시킨거지. 오히려 양난 전에 문약이었고 양난 끝나고 군사력을 더 키웠음.

그러다가 자기 밀어주던 후주 세종이 젊은 나이에 꼬꼬마 하나만 남기고 요절하자 나라꼴도 걱정되고 지 욕심도 나고 해서

부하들이나 지 동생하고 싸바싸바 짜고 고스톱쳐서 찬탈하고 송나라 세웠다.

그래도 신하로선 이런 군주 밑에서 일하는 게 제일 편한 것이, 자기가 찬탈했던 꼬꼬마나 그 자손을 핍박하지 않고 잘 대해줬다.

(이전까진 찬탈 후에 전 왕조의 자손은 씨를 말리는 게 패시브였다. 그 악순환을 최초로 끊은 게 이 사람.)


요즘 사람들이 저 잘 대해줬다는게 어느정도였는지 이해 못할수도 있는데,

송나라가 먼 훗날, 남송이 되어 몽골한테 모든 지역이 다털리고 영혼을 끌어모아 몽골이랑 최후의 맞다이를 준비하는 애산 전투에서도

후주 세종의 먼 자손들이 송나라의 마지막 운명을 함께하기 위해 도망가지 않고 함께 싸운것은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처럼 중국사에서도 가장 많은 충신열사가 나온 게 송나라 때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고조나 후대의 주원장과는 달리 부하들 권력 뺏을 때에도 통수쳐서 뺏는 게 아니라

술자리 열고 조곤조곤 말로 설득해서 부하들이 알아서 병권 놓게 했다.

야사에선 "배주석병권"이라고 해서 술자리에서 하소연해 명예퇴직시킨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힘 있는 신하들 임지를 수시로 바꾸어 뿌리를 못 내리게 하는 식으로 약화시켰는데,

이 때에도 임명장만 휙 던져주는 게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님 바쁘게 오라가라 해서 죄송하지만, 님 아니면 해줄 사람이 없음요 ㅠ ㅠ"라고 하니

신하들 입장에서도 속셈은 보이지만 황제가 직접 읍소하는데 뭐라 하긴 그렇고 해서 "에라 까짓거 해 드립죠" 하고 따라간 것.

신하들에게도 너그러워서, 단순히 엠살 안시킨 정도가 아니라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신하들 봉급이 가장 후했던 게 송나라 때였다.

(반대로 가장 박봉이던 때는 명나라.)

문제는 나중에 이게 누적이 되다 보니 요나라, 금나라에 세폐주던 것하고 겹쳐서 송나라 재정을 갉아먹음.


그런데 끝이 안 좋은 게, 지 옹립했던 동생 조광의한테 도끼로 시해당했단 의혹이 있다. "촉영부성(燭影斧聲)"이란 고사 찾아봐라.

형 유조랍시고 조카도 제치고 지가 황제가 됐고(송 태종), 원래 후계자였던 조카는 나중에 자살했는데 이것도 모살당한 거란 썰이 있다.

다만 그 뒤로 북송 황위는 조광의 혈통이 계속 잇다가,

북송 멸망 후 초대 황제인 고종을 제외한 2대 황제부터 남송 멸망 때까진 전부 조광윤 혈통이 뒤를 잇는다.

애산 전투 때 물에 논개질해 죽은 사람들 뺀 나머지 황족하고 가족들은 쿠빌라이(원나라 세조)가 거둬가서 후하게 대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