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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이 완료된 단지뿐 아니라 산업단지계획이 승인되어 조성 중인 국가산업단지도 포함한다.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단계의 사업은 제외한다. | |
대덕연구개발특구(大德硏究開發特區, Daedeok Innopolis)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와 대덕구 일대에 조성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 집적지역이다. 흔히 대덕특구라고 줄여 부르며, 그 모체인 대덕연구단지라는 이름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KAIST를 비롯하여 ETRI, KARI, KAERI, KRIBB, KRICT, KIMM, KIER, KIGAM 등 대한민국에서 이름 좀 들어봤다 싶은 이공계 연구기관들이 대거 몰려 있다.
대한민국에서 연구소를 한 동네에 이렇게까지 몰아넣은 곳도 별로 없다.
1973년 정부가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 기본계획을 세우면서 시작됐으며, 1992년 대덕연구단지 조성이 사실상 완료됐다. 이후 단순히 정부출연연구소가 모여 있는 연구단지를 넘어 연구성과의 사업화와 기업 창업까지 연결시키겠다는 목적으로 2005년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출범하였다.[1]
역사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민국의 주요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서울특별시에 몰려 있었으며 정부는 국가적인 연구개발 역량을 한곳에 집중시키기 위한 대규모 연구단지를 계획했다. 이에 따라 1973년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 기본계획이 수립됐고, 이듬해부터 기반시설과 연구소 건설이 시작됐다.[1]
입지로 선택된 곳은 당시만 해도 대전 시가지에서 꽤 떨어져 있던 대덕 일대였다. 오늘날에는 아파트와 연구기관, 도로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서 상상이 잘 안 가지만 처음 계획되던 시절에는 말 그대로 산과 논밭 사이에 연구소를 짓는 수준이었다.
일단 연구소부터 박아놓고 도시가 나중에 따라왔다.
1980년대부터 여러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본격적으로 입주하면서 연구단지의 형태가 잡혔다. 1986년에는 대덕연구단지가 대전 행정구역으로 편입됐으며, 1992년에는 대덕연구단지 조성사업이 준공됐다. 1993년에는 대덕연구단지관리법이 제정되면서 단지 운영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1]
1990년대 이후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연구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대전시가 이 일대를 대덕밸리로 선포하면서 벤처기업과 첨단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연구소가 아무리 많아도 논문과 특허만 쌓이고 실제 기업과 산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계속 지적됐다. 이에 정부는 연구기관의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고 연구소기업과 첨단기술기업을 육성하는 형태의 혁신클러스터를 만들기로 했고, 2005년 기존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주변 산업지역까지 묶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출범했다.
즉 대충 말하면
대덕연구단지 = 연구소를 왕창 모아놓은 곳
이었다면,
대덕연구개발특구 = 연구도 하고 그걸 회사 차려서 돈도 벌어보자는 곳
으로 범위와 기능이 확장된 것이다.
구성
대덕연구개발특구는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와 대덕구의 33개 법정동에 걸쳐 있으며 크게 5개 지구로 나뉜다. 대전광역시가 제시하는 지구별 면적을 합치면 약 49.8㎢에 달한다.[2]
| 지구 | 주요 지역 | 면적 |
|---|---|---|
| Ⅰ지구 | 대덕연구단지 | 27.8㎢ |
| Ⅱ지구 | 대덕테크노밸리 | 4.3㎢ |
| Ⅲ지구 | 대덕산업단지 | 3.2㎢ |
| Ⅳ지구 | 북부 그린벨트 지역 | 10.5㎢ |
| Ⅴ지구 | 국방과학연구소 일원 | 4.0㎢ |
Ⅰ지구
가장 유명한 지역으로 사실상 사람들이 대덕연구단지라고 생각하는 곳이다. 도룡동, 가정동, 신성동, 어은동, 구성동, 전민동 등을 중심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 연구지원기관이 집중돼 있다.
KAIST, ETRI, KARI, KAERI, KRIBB, KRICT, KIMM, KIER, KIGAM 등 웬만한 국가 연구기관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여기에 국립중앙과학관, IBS, 대전엑스포를 개최했던 엑스포과학공원 일대까지 이어져 있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관련 시설 밀집도로는 독보적인 수준이다.
과학 교과서 뒤에 나오는 기관 이름들을 실제 지도에 검색해보면 죄다 여기 근처에 있다.
Ⅱ지구
관평동과 용산동 일대의 대덕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기존 연구단지가 정부출연연구소 중심이라면 이쪽은 상대적으로 첨단기업과 산업시설의 비중이 높다.
대덕특구에서 개발된 기술을 실제 제품과 사업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IT·전자·바이오·정밀기계 등의 기업과 기업부설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Ⅲ지구
대덕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연구소와 대학 중심의 Ⅰ지구와 달리 실제 생산시설과 산업체가 밀집한 지역으로 연구개발과 제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박사들이 논문 쓰는 곳만 특구가 아니라 그걸 실제로 공장에서 찍어내는 동네까지 한 세트로 묶은 것이다.
Ⅳ지구
특구 북부의 개발지역을 포함한다. 신동, 둔곡동 등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와 연계된 지역들이 포함되며 첨단산업과 연구시설을 추가로 유치하기 위한 공간으로 개발돼 왔다.
Ⅴ지구
국방과학연구소 일원을 중심으로 한다. 이름 그대로 국방과학 및 방위산업 연구개발과 깊은 관련이 있다.
주요 기관
대덕특구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학 하나나 연구소 하나가 중심이 되는 일반적인 연구단지가 아니라 여러 분야의 국가 연구기관이 좁은 지역 안에 동시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다.
기관마다 연구분야도 완전히 다르다. 전자통신, 원자력, 우주항공, 기계, 화학, 생명공학, 에너지, 지질, 천문, 국방까지 거의 모든 이공계 분야가 한 지역 안에 들어가 있다.
문과가 길을 잃으면 상당히 불리한 동네다.
특히 ETRI는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KARI는 인공위성과 발사체 개발을 담당해 왔다. KAERI 역시 국내 원자력 기술 연구의 핵심 기관이고, KRISS은 국가 측정표준을 담당한다.
이런 연구기관들이 서로 자동차로 몇 분에서 수십 분 거리에 몰려 있다는 점 자체가 대덕특구의 핵심 경쟁력이다.
연구개발과 산업
대덕특구가 단순한 연구소촌과 다른 점은 연구결과를 실제 기업과 연결하는 기술사업화 기능을 제도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거나 연구자가 직접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연구소기업 제도가 대덕특구와 함께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연구기관이 보유한 기술을 직접 사업화하기 위해 연구기관 등이 자본을 출자해 특구 안에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통계에 따르면 대덕특구의 입주기관 수는 2005년 752개에서 2024년 3,063개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전체 고용인원도 23,558명에서 99,715명으로 늘었다. 2024년 기준 박사급 인력만 19,000명을 넘는다.[3]
동네 인구조사하다가 박사학위 소지자만 따로 세도 웬만한 소도시 인구가 나온다.
2024년 기준 입주기관 가운데 기업은 2,952개이며, 연구개발비는 약 9조 9천억 원 규모다. 같은 해까지 대덕특구에서 누적 등록된 국내 특허도 9만 건을 넘어섰다.[3]
이 때문에 대덕특구는 흔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혁신클러스터로 소개된다. 다만 국가연구소가 밀집했다는 것과 이곳에서 만들어진 모든 기술이 성공적으로 상업화됐다는 것은 당연히 다른 이야기이며, 연구성과의 기술이전과 지역기업 성장, 수도권으로의 인재 및 기업 유출 문제는 꾸준히 과제로 지적돼 왔다.
대덕연구단지와의 차이
대덕연구단지와 대덕연구개발특구는 일상적으로 섞어서 쓰이지만 엄밀하게는 범위가 다르다.
대덕연구단지는 1970년대부터 조성된 연구기관 중심의 기존 지역을 의미하며 현재 특구 구분상으로는 대체로 Ⅰ지구에 해당한다. 반면 대덕연구개발특구는 2005년 출범하면서 기존 연구단지에 대덕테크노밸리, 대덕산업단지, 북부 개발지역, 국방과학연구소 일대 등을 추가한 훨씬 넓은 개념이다.
그래서
대덕연구단지 ⊂ 대덕연구개발특구
라고 생각하면 대충 맞다.
이걸 모르고 지도에서 대덕특구를 검색한 뒤 "왜 연구소 옆에 공장이 있음?"이라고 하면 공장까지 특구라서 그렇다.
특징
대덕특구의 도시경관은 일반 산업단지와 상당히 다르다. 대형 공장과 창고가 빽빽하게 붙어 있는 형태보다는 숲과 언덕 사이에 연구기관 캠퍼스가 따로 떨어져 배치된 곳이 많다. 초기부터 연구환경과 녹지를 고려해 조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도룡동·가정동·신성동 일대에는 연구소마다 넓은 부지를 사용하고 있어 건물 밀도가 비교적 낮다. 이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의 고밀도 업무지구와 비교하면 상당히 한적해 보이는데, 건물 안에서는 반도체, 인공지능, 우주개발, 원자력, 로봇, 바이오, 양자기술 같은 걸 연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면 산책하기 좋은 공원인데 건물 간판을 보면 갑자기 국가 R&D 예산 냄새가 난다.
또 다른 특징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 민간기업 연구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KAIST나 충남대학교에서 양성된 연구인력이 정부출연연이나 기업으로 이동하고, 출연연 기술이 기업에 이전되거나 연구자들이 창업하는 식의 산학연 연계를 목표로 한다.
교통
대덕특구는 대전 북서부와 북부에 상당히 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특정한 하나의 역이나 중심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존 대덕연구단지의 중심 지역은 유성구 도룡동·가정동·신성동 일대이며, 대전 도시철도 1호선의 정부청사역, 월평역, 유성온천역 등에서 버스나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기관 하나하나의 부지가 워낙 크고 기관 사이 거리도 상당해 대중교통만으로 여러 연구소를 연속해서 방문하기에는 불편한 편이다.
지도만 보면 옆 연구소인데 걸어가려고 하면 산 하나와 왕복 8차선 도로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향후 대전 도시철도 2호선 등 대전의 도시철도망 확충에 따라 접근성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의의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대한민국이 1970년대부터 추진한 국가 주도 과학기술정책을 공간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연구기관과 대학을 특정 지역에 집적시키고 장기간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해 국가적인 연구거점을 만든다는 계획이 수십 년간 이어져 현재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한국의 전자통신, 원자력, 우주항공, 정밀측정, 화학, 기계, 생명공학 등 여러 분야에서 대덕의 연구기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연구개발 기반을 기업과 산업으로 확장하기 위해 연구개발특구 제도까지 만들어졌다.
1973년 기본계획 수립을 기준으로 하면 2023년에 대덕연구단지 출범 5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이 가난하던 시절에 "여기다가 과학자들 모아놓고 몇십 년 연구시키자"며 만든 동네가 반세기 뒤 연구기관 3천 곳이 넘는 거대한 클러스터가 된 셈이다.
여담
- 대덕이라는 이름 때문에 대덕구에 대부분 있을 것 같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대덕연구단지의 핵심 연구기관은 오히려 유성구에 몰려 있다.
- 기존 대덕연구단지는 현재 대덕연구개발특구의 Ⅰ지구다.
- 대덕특구 전체 면적은 기존 연구단지보다 훨씬 넓으며 대덕테크노밸리와 대덕산업단지까지 포함한다.
- 1993 대전 엑스포가 개최된 엑스포과학공원 역시 대덕연구단지와 인접해 있어 이 일대가 대한민국 과학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줬다.
- 연구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유성구 일대는 대한민국에서도 고학력 연구인력이 특히 많이 집중된 지역 가운데 하나다.
- 연구기관 이름이 비슷해 처음 온 사람에게는 상당히 헷갈린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이 그냥 한 동네에 줄줄이 있다.
- 각 연구소가 독립된 캠퍼스처럼 구성돼 있어서 같은 대덕특구 안에서도 분위기가 제각각이다.
-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많다는 특성상 주변 식당에서 점심시간이 상당히 명확하다. 12시쯤 갑자기 박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 대전광역시가 과학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