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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 1905년 · 5명
군부대신
학부대신
외부대신
내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을사삼흉 1905년 · 3명
궁내부대신
탁지부대신
법부대신
정미칠적 1907년 · 7명
군부대신
내각총리대신
탁지부대신
학부대신
법부대신
내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경술국적 1910년 · 8명
궁내부대신
승녕부총관
시종원경
친위부장관 · 시종무관장
내각총리대신
탁지부대신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정미칠적(丁未七賊)은 1907년 7월 24일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내정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정미7조약에 찬성하고 협력한 일곱 명의 친일 대신을 가리킨다.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이 이에 해당한다.

개요

을사오적이 나라의 외교권을 팔아먹었다면, 이놈들은 남아 있던 내정권까지 팔아먹은 새끼들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은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이후 순종이 즉위하자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의 내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정미7조약 체결을 강요했다.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을 비롯한 일곱 대신은 이에 찬성하고 일본의 요구에 협력했다. 이들을 정미칠적이라고 부른다.

정미7조약에 따라 대한제국 정부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중요한 행정처분을 내릴 때 일본 통감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고위 관료를 임명할 때도 통감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또한 일본인이 추천한 관리를 대한제국 정부의 관리로 임명하도록 강제되었다.

게다가 별도로 체결된 비밀 부수각서에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나라의 외교권도 모자라 행정권과 인사권, 군사력까지 일본에 넘겨주는 데 협력한 것이다.

~~이완용 혼자 나라를 팔아먹은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7인조 팀플레이였다.~~

다만 정미7조약에 직접 서명한 사람은 대한제국 측 대표 이완용과 일본 측 대표 이토 히로부미였다. 나머지 여섯 대신은 내각에서 조약 체결에 찬성하고 관련 정책에 협력한 인물들이다.

명단

이름 당시 직책 주요 행적
이완용 내각총리대신 정미7조약에 직접 서명한 인물. 을사오적이기도 하며, 1910년 한일병합조약까지 체결했다. ~~매국 3관왕.~~
송병준 농상공부대신 친일단체 일진회의 핵심 인물로, 일본의 국권 침탈에 적극 협력했다. 이후 한일병합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병무 군부대신 대한제국의 군사행정을 담당하면서 정미7조약에 찬성했다. 이후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직접 지시하고 정미의병 탄압에도 관여했다.
고영희 탁지부대신 대한제국의 재정을 담당하던 대신으로, 정미7조약과 한일병합에 모두 협력했다. 이후 일본의 자작 작위를 받았다.
조중응 법부대신 대한제국의 법률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면서 일본의 내정 장악에 협력했다. 이후 한일병합에도 관여했다.
이재곤 학부대신 대한제국의 교육행정을 담당하면서 정미7조약 체결에 찬성했다. 한일병합 이후 일본의 자작 작위를 받았다.
임선준 내부대신 대한제국의 내무행정을 담당하면서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에 협력했다. 이후 탁지부대신을 지냈다.


이들은 모두 대한제국의 주요 행정부처를 책임지고 있던 대신들이었다. 국가의 독립과 행정권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일본의 내정권 침탈에 협력한 것이다.[1]

~~장관이라는 놈들이 자기 부처의 권한을 일본에 갖다 바쳤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직원들이었을 것이다.~~

을사오적과의 관계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은 모두 일본의 국권 침탈에 협력한 친일 대신들을 가리키지만, 서로 다른 사건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구분 을사오적 정미칠적
연도 1905년 1907년
관련 사건 을사늑약 정미7조약
주요 내용 외교권 박탈 내정권 장악 및 군대 해산
인원 5명 7명
공통 인물 이완용

두 집단에 모두 포함되는 인물은 이완용 단 한 명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인물들이 을사늑약에 반대했다거나 일본의 침략에 저항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미칠적은 1907년 정미7조약 체결에 협력한 대신들을 구분한 명칭일 뿐이다.

또한 1910년 한일병합에 협력한 인물들을 가리키는 경술국적도 존재한다.

정미칠적 가운데 이완용,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은 경술국적에도 포함된다.

~~1905년에 나라를 한 번 팔아먹고 끝난 게 아니라 1907년, 1910년까지 꾸준히 팔아먹은 놈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결과

정미칠적이 찬성한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뿐 아니라 내정권까지 사실상 일본에 빼앗겼다.

일본은 정부 각 부처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정치를 실시했으며, 법률 제정과 주요 행정처분도 일본 통감의 승인을 받도록 만들었다.

1907년 8월 1일에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었다.

이에 반발한 박승환 참령이 자결하면서 남대문 전투가 발생했고, 해산된 군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의병에 합류하여 정미의병으로 이어졌다.

정미7조약은 결국 1910년 한일병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계가 되었으며, 정미칠적은 그 과정에서 일본의 국권 침탈에 협력한 인물들로 역사에 남았다.

여담

  • 정미칠적이라는 이름은 조약이 체결된 1907년이 정미년(丁未年)이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뒤의 '적'(賊)은 역적이라는 뜻이다.
  • 정미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역시 이완용이다.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모두 포함되는 인물로, 일본의 단계적인 국권 침탈에 세 차례나 협력했다.
  • 정미칠적 일곱 명이 모두 정미7조약에 직접 서명한 것은 아니다. 실제 서명자는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였다.
  • 이병무는 군부대신으로서 군대 해산에 직접 관여했다. 군대를 지휘하고 보호해야 할 군부대신이 오히려 자기 나라 군대를 해산시키는 데 앞장선 것이다.
  • 정미칠적 가운데 상당수는 한일병합 이후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으로 활동했다. 일본의 침략에 협력한 대가로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도 지위를 유지한 셈이다.

같이 보기

각주